나의 태생이 충북 단양군 적성면 대가리 윗 동네인
하원곡리에서 농삿군의 4남 1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울 형제들은 7살만 되면 제천으로 유학을 와야했다.,
다른 친구들은 대가리 국민학교가 멀어도
부모님 슬하에서 살면서 다 걸어서 다녔다..
단양 고향 집에서 대가국민학교까지 한 십리(4km)정도 된다.
나두 단양 고향집인 적성면 하원곡리에서 국민학교까지는 다니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게 너무너무 싫었다.
부모님이 울 형제들 공부시키려고
제천시내 대제중학교 옆에다가 집하고, 논, 밭을 사 놓았다
(약 3천평 정도)
당시 땅, 집값은 제천시내나 단양이나 똑 같았다고 한다..
단양 골짜기 땅 1평 팔면, 제천시내 땅 1평를 살 수가 있던 시절이라.
기존에 있는 제천 청전동 새터동네 친구들보다도 더 부자였다.
부모님이 제천으로 나오셔서 우리들을 키우고 농사 지으시려고 했는데..
할머니가 부득부득 우기셔서 조부모님이 제천에서 사시고
부모님은 단양 적성면 하원곡리 골짜기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서
조부모님 밑에서 생활 하는게 넘 서러웠다.
국민학교 다닐때까지는 부모님이 그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제천 동네 친구들은 사는것도 우리보다 못 살면서,
부모님이 안 계신줄 알고 놀리기도 하고..
제천시내 친구들이 대체적으로 단양 고향 칭구들보다 기가 쎄다..
나의 학교 칭구들은 거의 다 용띠이다.
나만 7살에 입학해서 뱀띠이고~
단양 친구들은 하나같이 점잖고 매너가 좋았는데.
어릴땐 기가 많이 죽어 지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게 서럽기도 하고..
국민학교 1학년때 여름 방학하는 날..
비가 많이 왔다.
학교 갔다가 오는 길에 비닐 우산으로
물장난을 하다가 우산이 물에 떠 내려갔다.
집에 가면 할머니한테 혼날게 두려워
그길로 엄마가 있는 단양 고향집으로 내뺐다.
오십리(20km) 길을 걸어서 갔다.
비포장 도로를 삼곡역까지 걷고,
거기서 파랑리까지 산을 넘어야 되는데,
어린 나이에 호랑이가 나올까봐
겁이 엄청 났지만 떨면서 산을 넘었다.
저녁 어두울 무렵 단양집에 도착했다.
9시간 가까이를 걸은것 같다.
엄마한테 할머니한테 얘기도 안하고 왔다고,
혼날것 같아서 뒤안에서 숨어 있었다.
캄캄한 밤에 막차를 타고 할머니께서 오셨다..
기영이가 없어졌다고 혹시 여기 왔나? 하고 찾으러 오신것이다.
그제서야 어머니가 나를 찾는다..
집 주변을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찾는다..
슬금슬금 나가니 어머니가 나를 껴안고 막 우신다..
어린것을 을매나 잡고 살았으면 겁이 나서
그 먼길을 걸어 왔냐고 하면서 말이다.
어제 일요일에 7살때 걸었던
그 길을 차를 몰고 복기를 해 봤다.
50년만에 다시 가보니 새롭기도 하고.
어린것이 어떻게 여기를 걸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이다.
지금은 산길에 임도가 생겨서 차가
겨우 다닐수 있을 정도는 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