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상

추억속의 겨울

제천늘보 2015. 3. 13. 11:17

 

 

어릴때 겨울방학만 되면 금수산 자락에 있는 부모님댁으로

내빼서 부모님의 따스한 품에서 겨울을 지냈지요.

 

아침 소죽은 새벽에 아버님이 끓여 주시고,

저녁 소죽은 거의 늘보가 끓여 주었지요.

 

큰 가마솥이 걸린 사랑방 아궁이에 불 때는게 재미도 있고,

잔불에 고구마 구워먹는 재미도 있어서 저녁 소죽은 늘보가 거의 끓였네요.

 

김이 펄펄나는 소죽을 들고 소 여물통쪽으로 가다보면 

김이 앞을 가리어 넘어지기도 몇번을 하였네요.

 

튼실한 암소가 여물 냄새를 맡고 목을 길게 빼고,

빨리 달라고 보채는 모습도 선하게 기억에 있네요.

 

어찌 되었든 늘보네 소는 넘 잘 묵어서

살이 통통한거로 기억이 됩니다.

 

나무를 때다보면 잡나무는 너무 잘 타기도 하고,

계속 나무가지를 집어넣어 주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고,

 

엄니도 안방 부엌에서 밥을 하시는라고

불 때시며 고생을 하시는게 안타까워 집 뒤에 선산이 있는

금수산 8부 능선까지 가서 참나무를 베어 오는게 겨울에 주로 하는 일이였네요.

 

눈이 쌓여 있으니 가지만 쳐내고,

밧줄에 묶어 끌고 내려오면 넘 쉽드라고요.

 

끌고 오다가 개골창으로 쳐박기도 하고..

하여튼 넘 재미있게 겨울방학을 지냈지요.

 

요즘은 시골에 가봐도 소죽 끓여주는 집도 없고,

나무를 때는 집도 없드라고요.

 

한겨울에 참나무를 베다가, 톱으로 토막을 내어

한참을 말려 두었다가 장작을 패어 헛간에 쌓아 놓으면

장작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고 엄니께서 엿도 만들어 주시고,

두부도 만들어 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옥로를 놓아서 산토끼도 잡고,

사이나를 놓아서 꿩도 잡아서 겨울엔 꿩만두를 엄청 먹었네요.

 

이 시절에는 지금처럼 등산복, 등산화도 없을때라

내복에 츄리닝만 입어도 추위도 별로 안타고, 산 다람쥐처럼

용맹무쌍하게 산을 다녀도 별로 힘든 줄을 몰랐는데 지금은

산에만 가면 혓바닥이 일미터는 기나와 가지고 빌빌거리니

이기 우찌 된 일인지.ㅠ

 

전기도 안들어 오던 동네라 저녁때는 호롱불을 켜놓고 

화로에 고구마도 구워먹고, 땅속에 묻어둔 무우도

꺼내다 먹으면 엄청 맛나던 시절이였지요.

 

요즘은 온갖 등산복,등산화등이 넘쳐나고,

을거도 풍부한 시대이지만 행복감은 그때가

더 좋은것 같이 느껴지니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촌구석에서 내복에 츄리닝 입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늘보가 출세를 했네요.

 

사교춤도 할 줄 알고,

댄스스포츠도 할 줄 알으니 출세한것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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